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엔리코 페르미 (문단 편집) == 사후 ==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원자력과 맨해튼 프로젝트의 아버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외 다른 굵직한 과학적 업적들이 많다. 특히 그가 최초로 양자역학을 통계학과 접목시켜 1926년에 발표한 페르미-디랙 통계는 현대 소립자 물리학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으며 페르미 사후에 그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1933년에 발표한 베타붕괴 이론은 현대의 기준으로는 약간의 부정확성이 있지만, 이후 학계의 관심을 촉진해서 12개가 넘는 노벨상이 이 분야에서만 나왔다. 2차대전이 끝나고 관심을 기울인 고에너지 입자물리학 실험은 이후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미국에서 후학 양성을 통해 핵물리학의 급속한 성장과 발전에 끼친 그의 영향은 독보적이다. 자신이 대학원에서 직접 가르쳤던 제자 5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50-60년대 다른 여러 노벨상 수상자들도 직간접으로 페르미와 연결되어 있거나 그의 조언을 받은 경우가 많다.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1956년부터 미 에너지부는 매년 에너지 부문의 연구, 개발에서 중요한 공로를 세운 과학자에게, 그의 이름을 딴 [[https://en.m.wikipedia.org/wiki/Enrico_Fermi_Award|'엔리코 페르미 상'(Enrico Fermi Award)]]을 시상한다. 주로 원자력 부문에서 연구 업적이 많은 물리학자들이 받았는데, 미 대통령 명의로 시상되기에 매우 큰 명예로 인정된다. 과거 맨해튼 계획에서 페르미와 함께 일했던 [[에드워드 텔러]],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도 수상자에 포함되어 있다. 페르미 사후 발견된 원자번호 100번째 [[원소(화학)|원소]]는 그의 이름을 기려 '[[페르뮴]]'으로 명명됐다. 이외 보즈의 이름을 딴 '보손(Boson)'과 상대되는 '페르미온(Fermion)'도 그 이름을 땄다. 그리고 그의 명언인 '모두 어디 있지?'는 '[[페르미 역설]]'로 불리며, 왜 전 우주에 우리 인간 말고 다른 지성체가 없는지를 증명하는 강력한 논리적 증거로 사용된다. 유명 물리학자인 만큼 본인의 이름을 딴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이 2008년은 발사되었는데, 엄청난 데이터로 연일 관련 논문을 쏟아낸다. 덕분에 죽어서도 [[페르미 거품|이름]]을 남기는 위엄을 과시한다. [[엔비디아]]가 출시한 [[GeForce 400]]과 [[GeForce 500]]을 이루는 마이크로아키텍처의 코드네임으로도 쓰인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